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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팽창과 사고하기(Thinking)-사고하기(Thinking)는 제약이 없다. 사고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신호상 교수
jamie | 승인2018.07.05 01:49

빅뱅이론(Big Bang Theory)은 이제 모두에게 익숙한 과학상식이다. 우주가 무에서 어떤 이유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폭발해서 우주가 만들어졌고, 현재의 우주에 이른다는 것이다.

아무 고민없이 받아들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여기에는 심오한 사고가 필요하다. 사실 우주에 대한 지식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그게 뭔데, 그거 알아서 뭐 할건데”라는 아주 실용적인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실용이라는 것은 근본 또는 기초가 있을 때 파생되는 자그마한 응용일 뿐인데, 실용/효율 이런 것들이 판단의 기준이고 우선된다. 실용 우선적 사고방식을 가져서는 미래를 포기한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근본이 바뀌면 기초가 흔들리면 그 곳에 뿌리를 둔 실용은 의미없는 외침이 되기 때문이다.

윤리는 실용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윤리는 고도의 철학이자, 삶의 기초인 것이다. 기초가 없는 윤리적 사례는 비윤리적 행위를 반복하게 만든다. 기업에서 기업정신에 윤리가 배어있지 않으면, CSR 조직을 만들고, 윤리경영을 강령으로 내세운다고 해도 형식에 그칠 뿐이다. 조금씩은 나아질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실용이 섞이게 되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언제든지 기본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기초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런 비실용적이라고 오판되는 삶의 방식을 심하게는 유교적 잔재라고도 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교가 언제 실용과 효율을 이야기 했던가요? 동양의 사유를 대표하는 유교는 ‘과학과 기술’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영역에서 깊은 사유를 통해 이론을 만들고 그 이론 위에 정치/경제/문화/사회/의 실용이 파생된 인간의 또 다른 지적 이론인 것이다. 이것은 사유의 대상이 다름일 뿐이지, 실용이냐 아니냐는 착각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니체를 알고 있다. “신은 죽었다”라고 요약되는 그의 철학사상이 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찌되었건 들어봤을 것이다. 베토벤도 알고 그의 웅장한 음악도 알고 있다. 모짜르트의 경쾌한 음악은 우리의 기분을 상큼하게 만든다. 과학자이자 예술가인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그녀의 눈썹에 대한 패러디도 숱하게 제작되고 있다. 맥스웰(Maxwell)을 기억하나요? 커피? 패러데이(Faraday)를 아나요? 과연 빼빼로데이처럼 패러디(Parody) 하는 데이(day)를 의미할까?

아인슈타인(Einstein)은 모두 아는 인물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위대한 과학자였고, 1940~1950년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아이돌이었다. 그의 행동, 몸짓이 화제가 될 정도의 엔터테이너였다. 그렇다면 아이슈타인이라는 이름만 알았을까? 대부분은 지금 시대의 최고 엔터테이너인 걸그룹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릴 수 있을 것이다. 더 열정적이면 그녀들의 춤사위도 따라할 것이다. 마찬가지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대해서도 열광하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토론했을 것이다. 최소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카페나 술자리에서 토론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변에서는 속으로 미친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유행은 따라하고 토론하면서, 기본은 아무도 따라하거나 고민하거나 사유하려 하지 않는다. 그 기본이 주는 영향력은 만대에 걸쳐 영원한데, 세속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안타깝다.

제가 우주, 물리, 양자, 더불어 신기술을 중심으로 글을 쓰는 이유도 이런 세속성을 탈피하고자 함이다. 우리가 사는 전기의 세상을 만든 위대한 과학자인 맥스웰과 패러데이에 대해서는 이름도 모르는 우리, 우리 대한민국이, 매년 10월에 노벨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착각하고 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는 이미 오래 전에 접은 채, 후배 작가들에게 나쁜 손짓이나 해대는 노회한 인간을 노벨상 후보로 기대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과학을 모르는 것에 대해 비난 받아야 한다고 논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도 모르는 채 실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맥스웰은 전자기학의 알파요 오메가이자, 무선 통신 시스템의 기원이 된 방정식이다. 이 방정식이 없었다면 현대 문명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했기에 서점 제본소에서 생계를 이어나가던 마이클 패러데이의 열정과 역발상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에너지는 없었을 것이다. “전기à자기”와의 관계를 “자기à전기”로의 관계로 사유하고 실험한 그가 있었기에 우리는 이 더운 여름날 에어컨 빵빵하게 틀면서 사무실에서 안락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근데 그 사람들의 이름도 공적도 아는 사람이 없다. 잠깐 여기서, 화살표 방향 하나 바꾼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다. 화살표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도 벅찬데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화살표 방향 뒤집기를 결코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정말 어려운 것이다.

다시 빅뱅으로 돌아가서. 밤이 왜 어두운가? 그것은 우주가 아직도 팽창중이므로 우주끝에서 방출된 빛이 지구에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우리의 밤은 다행히도 어두울 수 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우주는 계속 팽창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공간과 시간이라는 것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실험을 해보자. 상자가 하나 있다. 상자의 모양은 상관없지만 이해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구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볼때, 그 안에서 풍선을 분다. 그리고 풍선에 공기를 주입하면 풍선은 점점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르는 풍선은 팽창하는 우주를 나타낸다. 계속해서 불면 어느 순간에는 상자에 닿을 것이다. 계속 분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부풀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상자라는 공간이 꽉 찼기 때문이다. 풍선이 부풀어 오를 수 있는 것은 상자 내 비어있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자를 더 크게 하면 더 부풀어 오르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다. 맞긴 하다. 그 상자도 그 밖에 더 큰 공간에서 보면 하나의 작은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상자를 더 키울 수 있는 것은 더 큰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져 나가면 현재의 우주의 끝이라는 크기를 가진 상자에 도달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더 큰 공간이 없다. 더 큰 공간이 없기 때문에 공간을 확장할 수가 없다. 없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요? 공간이 없다는 개념이 이해되는가?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공간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는 못 하지만 가설을 설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근본을 향해 가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어떤 시점에서 이해된 정도를 가지고 가능한 다양한 활용과 실용을 추구하는 노력을 인류는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참고로 시간은 빛의 속도가 만들어 내는 공간의 차이다. 1차원, 2차원과 같은 수준에서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편의상 4차원으로 불리는 것이다. 시간자체가 차원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관찰되지 않는다면 이해되지 못하고 이해되지 못한다면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

유사한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양자역학이다. 물질이라고 정의된 것이 물질일 수도 있고 파동일 수도 있다, 정확히는 물질과 파동이 겹쳐(Superposition,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 중첩이라는 성질이 생기는지는 모르지만, 중첩이 있다는 가설 하에서 양자컴퓨터와 같은 실용적인 도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양자의 대표적인 성질인 중첩과 얽힘(Entanglement)을 받아들여야만 엄청난 계산능력을 가진 양자컴퓨터를 만들고, 양자컴퓨터에 맞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인류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숱한 난제를 해결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양자컴퓨터로 인한 기존 암호체계 붕괴를 우려하는 기사들이 많다. 맞고 틀림의 기준으로만 따져보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선 순위에서 한참 밀려난 일이다. 그것이 양자컴퓨터로 인한 암호체계 붕괴가 문제가 될 즈음에는 더 고도의 암호체계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므로 신문기사들의 예측은 일종의 코메디라 하겠다.

어떤 상자 내에 주어진 공간에서 물리적인 공간을 확대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히 정해져 있다. 이런 계(계)를 닫힌계라고 한다. 우리의 사유는 개인의 지적 능력, 고정관념, 환경의 제약 등으로 인해 여러가지 제약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훈련과 노력을 통해 그 제약을 벗어날 수 있다. 2,500여년 전에 인류는 사유를 통해 우주의 탄생부터, 우주의 순환, 그리고 우주의 끝까지를 다녀왔다. 다중 우주(Multi-University)라고 지칭되는 현대적 가설도 이미 고대 인도의 사유를 통해 완료된 상태이다. 다만 이것이 현재의 과학적 기준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증빙되지 않기 때문에 반복되지도 않고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는데 사용되지도 못하기 때문에 버려지고 천대받게 되었다.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서양인들이 동양을 지배한 이후 안타깝게도 그들의 초과학적 사유능력마저도 무시당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동양의 사유 창고를 열어본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이루어 논 문명의 또 다른 도약을 위해 동양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과학적 방식을 함께 더해 미래를 예측하는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고하기(Thinking)는 제약이 없다. 사고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다행히 유용한 도구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고, 방법론도 제시된 것들이 많다. 90세, 아니 100세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사고하기는 삶을 유지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도구이자, 기술이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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